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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스펙터클을 지양(止揚)하는 교회] 04-21-2024


스펙터클을 지양(止揚)하는 교회

“종교라는 땅을 거닐 때는 싹수없이 쿵쾅쿵쾅 걷지 말고, 신발을 벗고 맨발로 살금살금 걸어 다녀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수도원을 종종 방문하는데, 처음에는 수도사들의 모습이 너무 기운이 없어 보였습니다. 어깨도 꾸부정하고, 걸음걸이도 느리고, 기도나 찬송을 부를 때도 힘이 없어 보였습니다. 나이 많은 수도사만이 아니라 젊은 수도사들도 똑같았습니다. 그런데 유심히 보니까 기운이 없는 게 아니라 힘을 최대한 뺀 것이었습니다. 내 힘을 빼고 절대자 앞에서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것이 수도사들의 수행 방식이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을 바라보는 세상의 부정적 시선 가운데 하나가 ‘무례함’입니다. 친절과 사랑을 중시하는 기독교가 언제부터 ‘무례한 기독교’가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요즘 기독교는 ‘거침없이 하이킥’을 구사하려고 합니다. 예배도 웅장하고 화려해졌습니다. 말초적 감성을 자극하고, 보여주기에 집중합니다. 소위 ‘메가처지(대형교회)’에 가보면 화려한 조명이 무대를 비추고, 회중석은 캄캄해서 누가 옆에 앉아있는지 모를 정도입니다.

현대인은 ‘스펙터클’한 것에 환호합니다. ‘스펙터클(spectacle)’이라는 말은 ‘웅장하고 화려한’이라는 뜻입니다. 할리우드 영화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의 인생은 스펙터클 하지 않습니다. 지극히 소박하고 평범한 것이 우리 인생인데, 세상은 자꾸 스펙터클에 집중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종교도 스펙터클을 추구할 때 타락했습니다. 힘이 생기고, 화려하고 웅장한 것에 집중한 종교는 반드시 패망하고 말았습니다.

운동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건 몸에서 힘을 빼는 것과 자세를 낮추는 일이라고 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우리 교인들의 신앙생활은 물론 일상생활도 자연스럽고 자유로웠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례함이나 거침없음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말이나 행동이 조심스럽고,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아니라 생각하고 절제하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자기는 할 말은 하지만 뒤끝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제가 속으로 생각합니다. “할 말 다 했으니, 뒤끝이 있을 게 없지. 그렇게 다 터뜨려 놓고 뒤끝까지 있으면 어쩌라고.”

교회가 회복되려면, 스펙터클한 우리 사회에 저항해야 합니다. 그냥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알지 못하도록 조용히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소박하고, 진지하고, 조심스러우면서도 자유스럽고 따뜻했으면 좋겠습니다. 목소리 큰 사람이 분위기를 좌우하지 않고, 거침없는 말과 행동보다는 사려 깊은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중심이 되기를 바랍니다. “싹수없이 쿵쾅거리며 걷지 않고, 신을 벗고 조심스럽게 걷는” 교인들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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