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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제 아버님 고 한익성 장로] 03-17-2024


제 아버님 고 한익성 장로

아버님 장례 동안 아버님의 삶과 관련해서 세 가지가 생각났습니다.

첫째는 ‘교회’였습니다. 제 아버님은 학생 시절 고향에서 예수를 영접하고 열심히 교회를 다니셨습니다. 아버님이 신앙생활을 시작한 전주 덕진교회 100년사에 보면 아버님께서 주일학교 교사로 열심히 봉사했던 50년대 초반 사진이 있습니다. 1955년에 서울로 올라오신 아버님은 7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오로지 향린교회 한 교회를 섬겼고(미국에 사신 12년 동안에도 교적은 향린교회에 두셨음), 작년 가을 혈액암으로 건강이 악화되기 전까지도 인천에서 손수 운전해서 매 주일 교회를 빠지지 않았습니다. 이번 장례를 치르는 동안 설교와 추모사를 해주신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한결같았던 아버님의 교회 사랑을 증언해 주셨는데, 제가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교회 사랑은 제가 물려받은 첫 번째 유산입니다.

두 번째는 ‘책’이었습니다. 아버님은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를 했던 인연으로 출판사에서 일을 시작하신 후 평생 출판, 인쇄, 서점 일을 하셨습니다. 그래서인지 제게 늘 “책을 빌려보는 놈은 나쁜 놈이고, 빌려주는 놈은 더 나쁜 놈”이라고 말씀하셨고, 제가 책과 가까이하도록 하셨습니다.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문학사상>이라는 잡지를 정기구독 해주셨고, 대학 때는 구내서점에서 책을 마음대로 가져가면 아버님이 직접 결제해 주셨습니다. 아버님은 구순을 넘기셨어도 책을 읽으셨고, 이번에 아버님 방을 정리하다 보니 제가 우리 교회 칼럼이나 페이스북에서 언급한 책들을 사서 읽으셨더군요. 책은 제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두 번째 유산입니다.

셋째는 ‘여행’입니다. 아버님은 여행과 운전을 좋아했습니다. 아버님은 70세가 넘어서 미국에 오셨는데, 오시자마자 혼자서 인디애나에서 텍사스까지 40시간 넘는 기차 여행을 하셨습니다. 75세 때는 텍사스에서 인디애나까지 1,300마일을 이틀 동안 운전해서 오셨고, 돌아갈 때는 왔던 길은 재미없다며 다른 길로 가셨습니다. 평소 아버님은 아틀라스라는 지도책을 펴놓고 미국 전역을 상상으로 다녀보는 일을 낙으로 삼으셨습니다. 병상에 누워계시는 동안에 제 동생이 차를 처분하겠다고 말씀드렸더니 펄쩍 뛰시면서 못 팔게 하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제 아버님은 이 땅에서의 모든 여행을 마치고 진짜 좋은 곳으로 가는 마지막 여행을 떠나셨습니다. 저도 언젠가는 그곳으로 아버님 만나러 가겠지요. 그때까지는 이 땅에서의 나그네 삶을 성실하고 유쾌하게 살아가겠습니다.

흔히 장례식 때 형제들이 불화하는 경우가 있다는데, 우리 형제들은 이번에 평소보다 더 화목하게 보냈습니다. 누군가 ‘유산’ 없어서 그렇다고 하더군요. 제 아버님은 유산으로 남긴 재산이 없습니다. 대신 신앙과 정신적 유산을 남겨주셨습니다. 그게 더 감사합니다.

이번에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위로해 주신 교우 여러분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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