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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놀라운 부활절] 03-31-2024


놀라운 부활절

철학자 플라톤은 "테아이토스(Θεαίτητος)"라는 자신의 대화록에서 “놀람의 경험이야말로 철학자의 것이네. 철학은 오직 놀람에서만 출발하기 때문이지.”라고 말했습니다. ‘놀람’의 감정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발생했을 때 생깁니다. 내가 전혀 계산하거나 고려하지 않은 상황이 놀람의 대상입니다. 놀람의 감정은 부정적인 것도 있고, 긍정적인 것도 있습니다. 누가 골목에 숨어 있다가 갑자기 튀어나오거나, 공포 영화를 볼 때 갑자기 뭔가가 튀어나오면 놀라는데, 이런 감정은 부정적 놀람입니다. 하지만 깜짝 생일 파티나 선물은 매우 유쾌한 감정을 안겨줍니다. 왜 ‘놀람’의 감정이 철학의 출발점이라고 했을까요? 플라톤과 비슷한 말을 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글을 보면 철학의 시작점인 ‘놀람’이 뭔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놀람을 통해서 우리는 철학하기 시작한다. 난관에 부딪혀서 놀라는 사람은 스스로를 무지하다고 생각하고, 이 무지에서 벗어나려고 철학을 하는 것이다.”

여기서 ‘난관(難關)’은 헬라어로 ‘아포리아’인데, 길을 뜻하는 ‘포로스(poros)’에 부정을 뜻하는 ‘아(a)’가 붙어서 갑자기 길이 없어진 상황을 가리킵니다. 익숙한 것이 사라져서 느끼는 당혹감, 이제까지 안심하고 걸어온 길이 갑자기 없어졌을 때 느끼는 감정이 바로 놀람의 정체입니다. 그러니까 이 놀람은 새로운 것이 갑자기 나타나서 생기는 감정이 아니라 오히려 낯익은 것이 사라져서 생기는 감정입니다. 당연한 것이 더는 당연하게 느껴지지 않을 때, 내가 잘 안다고 생각한 것이 더는 의미가 없을 때 철학적인 놀람이 시작되는 겁니다.

놀람은 늘 우리를 깨어있게 합니다. 놀람을 느끼는 것은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아무것도 놀랍지 않고, 어떤 것에도 자극받지 않는 사람은 사실상 죽은 겁니다.

우리 신앙도 놀람에서 출발합니다. 모든 게 새롭고, 낯설고, 내가 아는 게 다 무용하다는 걸 깨닫게 되는 것이 신앙의 출발점입니다. 하나님을 경외(敬畏)한다는 건 그분의 존재를 놀랍게 여기는 겁니다. 부활절은 우리에게 놀람을 안겨다 줍니다. 죽은 이가 살아났다는 사실도 놀랍고, 빈 무덤도 놀랍습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이 놀람의 감정이 무뎌집니다. 해마다 찾아오는 부활절 행사나 예배도 그게 그거고, 늘 읽는 부활에 관한 성경구절도 더는 감동을 주지 않습니다. 내 영혼이 죽어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무덤에 찾아간 마리아와 여인들처럼, 베드로와 요한처럼, 불쑥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이라며 인사하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던 제자들처럼, 우리도 이번 부활절에, 그리고 우리 인생에 ‘놀라움’을 회복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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