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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알은 척과 모른 척] 03-03-2024


알은 척과 모른 척

얼마 전에 한 모임에 참석해서 낯선 분들과 인사를 하는데, 그중에 한 분이 “저는 한 목사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라고 인사를 했습니다. 제가 애틀랜타에 온 지 14년이 넘었고, 교회협의회 회장도 하고, 다양한 활동을 했으니 저는 안다는 말이 이상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마음속으로 “누구에게 무슨 얘기를 들었지? 나에 대해서 도대체 뭘 안다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면서 은근히 부담이 됐습니다. 물론 저에 대해 나쁜 말을 듣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러니 저를 잘 안다고 했겠지요. 그래도 왠지 나를 잘 안다는 말이 부담스러워서 모임 내내 그분과는 대화를 피했습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제 심정을 이해하실 겁니다.

세상은 좁습니다. 애틀랜타 한인사회도 매우 좁습니다. 한국 사람은 두 다리만 건너면 다 인연이 닿습니다. 지연, 학연을 중시하고, 관계를 중시하는 한국 사람들은 누군가를 만나면 그 사람과 인연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게 늘 좋은 건 아닙니다. 때로는 나를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게 편하고 자유로울 때가 있습니다. 더구나 내가 직접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게 아니라 ‘나를 아는 사람을 통해 나를 안다’는 사람을 만나는 건 무척 부담스럽습니다.

현대인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익명성(anonymity)’을 원한다는 겁니다. 내가 드러나기보다는 드러나지 않기를 기대합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대형교회를 선호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도 바로 이 ‘익명성’입니다.

교회에 새로 오는 분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 새로 오는 분들은 매우 예민합니다. 조심스럽게 교회에 정착합니다. 그런데 자기를 잘 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고, 그것도 다른 사람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면 불편할 게 틀림없습니다. 새로 오신 교인에 대해서 이것저것 알아보거나 이야기를 들을 필요도 없고, 혹시 어쩌다 이야기를 들었다고 해서 그걸 전달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아마도 친근함을 표현하고자 그럴 테지만, 오히려 역효과가 나기 쉽습니다.

살다 보면 아는 것도 모른 척 할 필요가 있습니다. 굳이 뭔가를 알아보려고 애쓸 필요도 없습니다. 알은척해야 할 일과 모른 척 할 일을 분별하는 건 지혜롭고 성숙한 태도입니다.

사람을 새로 만나는 건 기대, 흥분과 동시에 불안과 긴장을 가져다 줍니다. 사람들은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새롭게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가고 싶어 합니다. 그러니 “내가 당신을 잘 안다. 내가 누구를 통해서 당신 얘기를 많이 들었다. 당신이 아는 누구누구를 나도 잘 안다.”는 식의 인연 찾기는 새가족 정착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저는 새가족이 오시면 ‘신상 캐기’를 하지 않으려고 애씁니다. 시간이 지나면 잘 알게 될 것이고, 또 서로를 알아가려면 그만한 시간을 통한 신뢰가 쌓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는 서로 알아도 모른척하면서 신뢰가 쌓일 시간과 경험을 쌓아가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관계가 서로 성숙한 관계로 깊어지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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