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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초대교회처럼 새로워지는 교회] 04-14-2024


초대교회처럼 새로워지는 교회

영국 에딘버러 대학 명예교수 래리 허타도는 <처음으로 기독교인이라 불렸던 사람들>이라는 책에서 소수로 시작된 초대 기독교가 어떻게 박해 속에서 파격적인 성장을 이루어졌는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초기 기독교는 고대인들이 흔히 생각했던 종교로서의 기본요소인 제단, 신상, 제사장, 제물, 그리고 신전도 없었습니다. 유일신 하나님을 경배하는 점은 유대교와 같았지만,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하는 점에서 유대인들과 첨예한 갈등을 빚었고, 우상 숭배를 거부하는 ’배타성‘은 로마 사회의 극심한 박해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기독교인은 서기 40년경에 1,000명으로 시작해서 100년에는 1만 명, 200년경 에는 20만 명으로, 그리고 300년경에는 500 ~600만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3세기에는 로마 제국의 기독교 말살 정책이 시행되었는데, 4세기 초인 313년에 놀랍게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고, 테오도시우스 황제에 의해 로마 제국의 국교로 승격되었습니다. 저자는 초기 기독교의 파격적인 성장에 대한 이유를 세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 번째, ‘책의 종교’로 대변되는 속성입니다. 기독교는 믿음을 가진 이들이 모여 예수의 말씀을 읽고, 공부하고, 의견을 나누고, 유포하는 이른바 텍스트 공동체적 성격이 강했습니다. 그 결과로 서기 300년까지 작성된 기독교 문헌은 알려진 것만도 최소 200가지가 넘으며, 그 분량도 방대합니다. 인쇄가 아닌 필사를 하던 시대에 초기 기독교인들은 네트워크를 구축해 열성적이고 자발적으로 방대한 양의 문헌들을 필사하고 유포하고 함께 나누는 행위를 지속했습니다. 이러한 그들의 노력은 기독교 성장의 강력한 토대가 되었습니다.

두 번째, 초기 기독교인은 세상과 어울리면서도 다르게 사는 사람들이었다는 점입니다. 당시 기독교인들은 비기독교인들의 분노를 야기해 고소당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동시에, 자신들의 신앙을 실천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기독교인들은 그들이 살아가는 나라의 법을 준수하면서도, 세상의 법을 넘어서는 삶을 살았습니다. 세상의 법이 요구하는 기준보다 더 높은 기준에 따라 살았던 것입니다. 기독교인은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았습니다.(They are in the world, not of the world)” 기독교는 기존의 종교와 달리 종교적 책무와 사회적인 실천을 강조하는 종교였기에 당시 소외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세 번째로 초기 기독교는 남자와 여자, 자유민과 노예, 어른과 아이들을 차별 없이 수용했다는 사실입니다. 사회적 신분이 다양한 신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예배를 드리다 보니 각자 신분에 해당하는 규범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어떤 행동 규범을 따라야 하는지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사회적 여건 때문에 행동 범위에 제약을 인정하면서도 신자들을 모두 동등하게 지체로 대우했습니다. 상대를 주체로 존중하는 이러한 태도가 당시 자신들의 처지를 바꿀 수 없었던 종속 계층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을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혁신을 넘어 혁명적이었던 초기 기독교, 누구보다도 약자의 편에서 그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었고 열성적인 배움과 나눔이 존재했던 초기 기독교, 앎에서 그치지 않고 윤리적인 가치들을 실천하고 독려했던 기독교인들의 모습과 우리의 모습은 얼마나 다른지를 생각해 봅니다.

교회 설립 기념주일입니다. 우리 교인들은 ‘책을 읽고 나누는 교인’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에서 살되 세상을 넘어서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모든 장벽과 차별을 넘어 하나됨을 이루는 교회와 성도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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